고민서 칼럼니스트

[고민서의 생활철학 에세이] 워킹맘의 소통 노하우

고민서 칼럼니스트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초코파이 광고 로고 송(logo song)입니다. 이 멜로디와 노래 덕분에 저는 초코파이를 좋아합니다. 겉봉지에 쓰여있는 한자 정(情)이 마치 초코파이를 먹기만 해도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거든요. 그런데요, 우리는 정말 말하지 않아도 알고, 서로 눈빛만 보아도 알까요? 오히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을까요?

학원 강사였던 나는 매일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곤 했습니다. 집에 오면 여섯 살짜리 딸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나는 잠든 아이의 얼굴을 몇 번 쓰다듬고는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하다가 새벽에 잠들기가 일쑤였습니다. 아침엔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나는 오후에 출근하니 자연스럽게 서로 어긋나는 일상이 반복되었어요. 친정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신 덕에 가능한 하루하루였지만, 마음 한 켠에는 늘 ‘함께 하지 못함’에 대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원에서 일하다가 집에 있는 딸이 보고 싶다고 말하니 동료 강사가 웃으면서 저에게 질문을 하더군요.

저는 망설임 없이 딸이랑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제 말에 모순을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은 벌고 있지만, 정작 행복의 대상인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요. 나는 왜 일을 하는 거지? 동료와 나눈 대화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질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인간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이야기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삶은 ‘성과’나 ‘목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누구와 어떤 시간을 어떻게 나누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는 다른 방식의 소통을 고민하게 되었고, 생각해 낸 것이 편지쓰기였습니다. 말 대신 글로, 시간 대신 감정을 나누는 소통방식을 선택한 것입니다. 스프링 노트를 하나 준비했습니다. 왼쪽은 내가 쓰고, 오른쪽은 아이가 글을 쓰게 했습니다. 이제 막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글씨도 삐뚤삐뚤, 맞춤법도 엉망이었지만, 아이가 남긴 그 흔적은 지금도 소중한 선물입니다.

편지는 말보다 더디고, 느리고, 번거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 담긴 마음은 오히려 더 깊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는 시간 속에서 드러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죠.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머물게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곱씹고, 다듬고, 써 내려가는 그 과정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사유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노트에 나무 그림을 그리고 ‘나무 고민서’. ‘김채리 나무’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가 아닌 줄기에 꽃을 피워놓았어요. 저는 그 그림에서 아이의 상상력과 관계의 은유를 보았습니다. 줄기에 꽃을 피우는 아이의 상상은 정해진 틀 안에서 벗어나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무의 줄기는 중심이며, 꽃은 생명과 연결을 뜻합니다. 아이는 우리의 관계를 ‘두 그루의 나무’로 표현하며, 그 중심에서 꽃이 피어나는 상징적 표현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지요.

편지를 통해 아이는 더욱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게 되었고, 저는 그 감정을 해독하며 웃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껴안기도 했습니다.

소통은 정확한 문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읽으려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경계가 세계의 경계라고 말했죠. 하지만, 아이와 나누었던 이 언어는 오히려 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말이었습니다. 틀린 글자, 엉성한 문장, 그 너머에 있는 사랑과 연결의 의지를 통해 우리는 진짜 소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일하고 공부하는 엄마로 늘 바빴지만 아이는 엄마 사랑에 부족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 실재합니다. 여러분은 사랑 표현을 어떻게 하세요? 만지는 사랑, 말하는 사랑, 글로 쓰는 사랑 등등 사랑 표현은 무척 다양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우리는 표현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정(情)’

이 광고 문구조차 초코파이를 주는 행위를 통해 나의 마음, 정(情)을 표현합니다.

유통되지 않은 사랑은 모두 무효입니다.

독서뉴스 / 고민서 칼럼니스트 poem89@naver.com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뿐이다. 독서는 그 시작이다.” – Albert 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