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ing Our Language Version 1.0.0

[고민서의 독서교육] 정서적 문해력 부재와 교육 현장의 딜레마

전환형 비독자와 청소년 독서교육의 과제

고민서 칼럼니스트

“우리 아이는 책을 싫어해서 국어 성적이 안 좋아요.”

“어휘력이 부족한데, 아무래도 독서를 안 해서 그런 거겠죠?”

상담 시 학부모들은 대부분 독서를 강조한다. 독서와 국어 성적 사이의 인과 관계를 맹신하는 것이다. 독서가 국어 실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가 ‘성적이 우수하다’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독서를 통한 정서적 태도와 인지적 역량에 있다.

즉, 독해력과 독서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순영 교수의 논문 ‘독자와 비독자 이해하기’에서도 제시되어 있다. 논문에서는 이분법적으로 단순히 독자를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을 넘어서, 읽을 수 있으나 자발적으로 읽지 않는 ‘비문맹 비독자’, 특히 ‘자발적 비독자(Aliterate)’의 존재를 조명한다.

이들은 기능적으로는 독서가 가능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독서와 단절된 상태다. 흥미와 동기 부족, 부정적 독서 경험이 누적되어 책으로부터 멀어졌고, 이는 곧 국어 학습의 좌절로 이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독자 다수는 대부분 과거에는 책을 좋아하던 ‘애독자’였다. 다만, 학령기가 지나면서 학업 부담, 디지털 콘텐츠의 확산, 독서를 점수화하는 평가 중심 교육 환경 등 여러 가지 외적 요인이 독서 흥미를 단절시키고, ‘전환형 비독자(Transitional Aliterate)’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전환형 비독자’란 과거에는 자발적으로 책을 읽었으나, 외적 요인으로 인해 독서 활동에서 멀어진 사람을 의미한다. 독서 능력과 긍정적 독서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현재는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독서를 회피하고 있는 상태다. 이는 영어권 교육학에서 논의되는 자발적 비독자 개념의 세부 유형으로, 독서 이력에 따른 ‘전환 경험’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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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라 스토츠키(Sandra Stotsky)는 하버드 교육 대학원 (HGSE, Harvard Graduate School of Education)에서 청소년 문해력 저하의 근본 원인 연구(Losing Our Language: How Multicultural Classroom Instruction is Undermining Our Children’s Ability to Read, Write, and Reason, 2002)를 통해, 미국 청소년의 문해력 문제는 ‘읽지 못함’이 아니라 ‘읽고 싶어 하지 않음’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중심으로, 어릴 때 책을 좋아했던 학생들이 왜 더 이상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가에 주목했다. 그 원인으로는 교과 중심의 독서 강요, 즉 지루한 텍스트를 중심으로 감상이나 토론 없이 분석만을 요구하는 방식이 학생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SNS, 게임, 짧은 영상 등 디지털 기기의 자극적인 콘텐츠에 비해 책은 몰입감을 주기 어려우며, 이는 독서로부터의 이탈을 가속화한다고 본다. 더불어 독서가 점수를 위한 행위로 전락하면서 읽기의 본래 목적이 상실되고, 독서 경험이 감정적 보상이나 즐거움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정서적 결핍을 초래한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초등 시기에는 책 읽기를 즐겨하던 학생이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독서를 멀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천경록 교수의 ‘사회적 독서와 비판적 문식성에 대한 고찰(새국어교육 2014)’은 독서를 단순한 정보 습득이나 개인 정서 함양의 도구로 보지 않고, 사회적 실천과 공동체적 성찰로 이끄는 행위로 재정의한다.

이는 독서가 텍스트와 독자의 1:1 관계를 넘어서, 타자와의 대화, 현실 세계와의 연계를 통해 비판적 사고와 실천적 태도를 기르는 과정임을 뜻하는 것이다. 곧,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며, 나아가 그 해석을 통해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이러한 관점은 “양서를 많이 읽으면 문해력이 상승하고 그 결과 성적도 향상된다”라고 말하는 기계적 공식의 허구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읽기의 본질은 얼마나 많이 읽고 아는가가 아니라, 독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어떤 의미를 만들고,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밖 현장에서 나는 책을 읽지 않거나 읽기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종종 만난다. 이러한 학생들은 대체로 독서는 ‘재미없고 지루한 것’, 혹은 ‘숙제니까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들에게 독서는 선택이 아닌 해야 할 과제이며, 독서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학생들도 과거에는 독서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이 끊어진 지점, 바로 그 ‘전환’의 시기를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전환형 비독자에 대한 이해는 단지 독서교육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이는 국어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읽기의 사회적·비판적 기능을 회복하는 교육과정의 설계로 이어져야 한다. 독서를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타자와 연대하며,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읽고 고민할 수 있는 역량, 그것이 진정한 국어 교육의 지향점이다.

결국 독서교육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히는 것이 아니라, 책을 다시 좋아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자신과 세상을 다시 읽어보게 하는 일이다. 교육자로서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아이’보다,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독서뉴스 / 고민서 칼럼니스트 poem89@naver.com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뿐이다. 독서는 그 시작이다.” – Albert 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