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이 뭔가요?”

낭독 강사라고 제 소개를 하면 종종 듣는 질문입니다. ‘낭독’이라는 단어 자체는 익숙하지만, 막상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 물으면 설명이 쉽지 않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을 ‘읽는 것’과 ‘낭독하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요? 왜 우리는 굳이 ‘소리 내어 읽는 일’을 다시 배워야 할까요?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낭독(朗讀)’은 글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한 기술처럼 느껴지지만, 낭독에는 그 이상의 의미와 힘이 숨어 있습니다. 이 설명을 듣고도 많은 분들은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그걸 꼭 배워야 하나요? 그냥 읽으면 되지 않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읽기’ 하면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눈으로 글을 읽는 장면, 그러니까 ‘묵독(默讀)’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묵독만이 독서의 전부는 아닙니다. 읽기의 방식은 소리 내어 읽는 ‘음독’과 ‘낭독’으로도 나뉘며, 이 두 방식은 비슷해 보이지만 핵심적인 차이를 지닙니다.
‘음독’은 말 그대로 글자를 정확히 소리 내는 행위입니다. 한글을 막 익힌 아이가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읽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음독은 주로 ‘발음 훈련’에 집중된 읽기이기에, 기술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반면 ‘낭독’은 그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행위입니다. 낭독은 단순히 텍스트를 소리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과 감정을 ‘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읽기’입니다.
즉, 듣는 이의 마음까지 닿게 만드는 읽기인 것입니다. 문장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고, 말의 리듬과 호흡을 조율하며, 때로는 여백을 두어 말의 울림이 퍼지도록 하는 것—그런 정성스러운 읽기를 저는 낭독이라 부릅니다.
“그럼 낭독은 연설이나 낭송 같은 걸 말하나요?”라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사전적으로 ‘연설’은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말’을 ‘여럿에게’ 전하는 것이 연설이라면, 낭독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낭독은 ‘타인의 글’을 ‘한 사람’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전달하는 일입니다.
내용의 출처도, 전달의 방향도, 듣는 이와의 거리도 완전히 다릅니다. 낭독은 무대 위에서 거창하게 울리는 말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조용한 공간에서, 한 문장을 천천히 소리 내어 읽는 일입니다. 누구를 설득하거나 감동시키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저 ‘이 글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서’, ‘나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하는 읽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낭독을 ‘나를 위한 행위’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읽는다 해도, 그 시작은 언제나 ‘나’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글을 고르고, 소리를 내고, 그 소리를 내 귀로 다시 듣는 그 과정은 곧 나와 나 사이의 대화가 됩니다. 마치 오래된 편지를 다시 읽으며 잊고 있던 감정과 마주하듯, 낭독은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되살리는 통로가 됩니다.
낭독은 나를 치유하는 도구이자, 나의 언어 감각을 깨우는 연습입니다. 글을 소리로 만나는 순간, 우리는 글의 뉘앙스를 더 섬세하게 느끼고, 문장의 감정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낭독은 그저 정보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문장과 감정이 몸에 스며드는 경험입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낭독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하고,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됩니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글의 리듬에 집중하는 그 시간은 깊은 호흡과 같습니다. 낭독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정돈하는 ‘소리 명상’이자, 언어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사적인 의식입니다.
그래서 이 연재의 제목을 ‘나를 위한 낭독’이라 붙였습니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낭독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의미를 더하고, 관계를 회복시키고, 언어 감각을 회복하며, 나를 치유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낭독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우리 모두가 낭독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함께 탐색해보겠습니다. 마음이 복잡한 날, 소리 내어 문장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낭독은 생각보다 더 조용한 위로가 되어줍니다.
우리, 함께 낭독해볼까요?
독서뉴스 권혜수 칼럼리스트 voyage_book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