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현 시인. (사진= 김들풀)

[인터뷰] 정성현 시인, “시는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언어입니다”

종합문예지 ‘포스트모던’ 신인문학상 수상
수상작 중 하나인 ‘마포역에서’는 삶의 무대

창문과 창문 사이, 도시의 어두운 밤하늘을 응시하며 한 줄 시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시는 세상과 소통하는 나만의 언어’라고 말하는 시인 정성현. 그는 긴 침묵의 시간을 지나 다시 시의 언어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시는 그에게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삶의 본질을 탐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메우는 다리가 되었다.

정성현 시인. (사진= 김들풀)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책임감이었습니다.”

종합문예지 <포스트모던>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정성현 시인은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이렇게 고백했다.

“기쁘기보다는 담담한 책임감이 더 크게 다가왔어요. 학창시절, 그저 시가 좋아서 밤을 새워가며 시를 썼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사회인이 되고부터는 점점 시와의 거리가 멀어졌더군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다시 그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 삶과 시 사이 벌어진 틈을 메우는 작업, 그게 앞으로의 저의 과제입니다.”

그가 말하는 시는, 감정의 즉흥적인 표출이 아니다. 삶의 이면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방식이며, 내면 깊숙한 외로움과 세계의 흐름 사이에서 길어 올린 진심의 언어다.

‘마포역’이라는 삶의 무대

수상작 중 하나인 「마포역에서」는 서울 마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익숙한 일상 공간에 스며든 기억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마포는 제가 살고 있는 곳이에요. 거의 매일 마포역을 지나치면서, 이곳이 단지 교통의 요충지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이별이 있었고, 누군가의 기다림이 여전히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걸 느꼈죠. ‘이곳은 어디인가. 옛 마포선의 종점, 가난한 연인의 이별이 노래처럼 떠도는 동네, 마포역.’ 이런 문장처럼, 이 역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특히 그가 언급한 대중가요 <마포종점>은 시의 정서적 배경이 되었다. 비극적 사랑, 이별의 흔적, 도시의 쓸쓸함이 시어 속에서 서정적으로 살아난다. 마포역은 그렇게 개인의 기억을 넘어 우리 모두의 감정을 불러내는 하나의 시적 무대가 된다.

정성현 시인. (사진= 김들풀)


“외로움이 인간을 이어주는 가장 깊은 언어입니다.”

정성현 시인은 길을 걷는 일을 사랑한다. 그는 도시의 골목을, 낯선 거리를, 때론 밤의 정적을 벗 삼아 걸으며 삶의 실루엣을 시로 옮긴다.

“길 위에 있으면 문득 외롭기도 하고, 또 문득 위로받기도 해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 시가 되죠.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구절처럼, 저는 시를 통해 서로의 외로움에 닿고 싶습니다. 어쩌면 외로움은 인간을 연결시키는 가장 오래되고 깊은 언어일지도 몰라요.”

그의 시에는 그래서 늘 고요한 결이 흐른다. 크고 요란한 목소리보다 낮고 조용한 울림으로 독자의 마음에 스며드는, 그런 시를 지향한다.

“진정성과 거리감, 그 사이의 미학을 믿습니다.”

시는 고백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거리다. 시인은 그 거리를 ‘적절한 여백’이라 표현한다.“시는 진심이 담겨야 하죠.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독자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늘 한 발짝 물러서서 시를 씁니다. 담백하지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도록. 그 여백이 독자에게 시를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준다고 믿어요.”

그의 시는 일기장이 아니다. 고요히 독자 앞에 펼쳐지는 거울이자, 삶의 잔향을 담는 조각보 같은 것이다.

“소박한 감정을, 사라지는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그는 거대한 서사보다는 일상의 미세한 떨림에 주목한다. 누군가의 숨결, 소멸해가는 감정의 조각들, 도시의 낮은 목소리.

“시를 통해 기록하고 싶은 건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장면들입니다. 바쁜 세상 속에서 잊혀가는 감정, 조용한 울림들.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잘못 들어선 길은 없다’는 믿음으로, 저 또한 시를 통해 삶의 방향을 묻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되는 한 줄의 시. 그게 제 시의 목표입니다.”

“시는 스스로와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시를 쓰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그는 조용히 당부한다.

“시는 결국 삶의 속도를 늦추는 작업이에요. 감정을 분석하기보다는 느끼는 것이 먼저고, 좋은 시를 쓰려 하기보다 시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입니다.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오래 곱씹는 것, 하루를 살면서 떠오른 한 문장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의 삶이라고 믿어요.”

그가 인용한 박노해 시인의 구절,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지나치지 않았는가?’

정성현 시인. (사진= 김들풀)


새벽 도시, 외로움 속에 피어난 시 한 편

그가 소개한 최근 작품 <고층 아파트>는, 현대 도시인의 삶을 담담히 비추는 시편이다.가까운 듯 멀고, 함께 있는 듯 외로운 삶. 그는 그 속에서도 여전히 별을 찾는 사람이다.

고층 아파트

창문 위에 창문

창문 아래 창문

층층이 쌓인 삶 사이

스며드는 삶의 무게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이웃

마음의 거리는 아득하고

차갑게 빛나는 불빛 아래

외로움은 그림자로 걷는다.

곁에 있어도 닿지 못하고

가까울수록 더 멀어지는 마음

함께 살아도 홀로인 도시인들

저마다 긴 밤을 견딘다.

우뚝 선 고층 아파트

창문마다 달빛이 머무는데

허허로운 마음

별을 찾아 길을 나선다.

도시 속 고층 아파트는 마치 감정이 차단된 구조물 같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들은 긴 밤을 견디며 조용한 불빛을 켠다. 그리고 그 불빛은 시인에게,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처럼 느껴진다.

정성현 시인. 그는 사람들 사이에 잊힌 감정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이며, 잿빛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별을 찾는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통해 세상과 가장 조용하고 아름답게 소통하는 사람이다.

한편, 종합문예지 <포스트모던>은 1991년 김종천 시인이 김남조, 유안진, 이근배, 정두수, 권일송, 유자효 시인 등과 함께 창간한 문예지로,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사유와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주력해 왔다. 현대적 감각과 고전을 아우르는 작품과 담론을 제시하며, 창조적 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발굴하고 시대적 흐름과 철학적·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신진 작가 발굴과 다양한 문학 교류를 통해 문학계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출처 : 문학뉴스(http://www.munhaknews.com)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뿐이다. 독서는 그 시작이다.” – Albert 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