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서 탄생한 ‘미니 뇌’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배양해 인간 뇌 구조 발달과 기능을 구현한 ‘뇌 오가노이드’(뇌 유사 장기체)는 치매 등 난치성 뇌질환 연구와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오가노이드란 시험관내에서 생성된 장기로, 실물의 장기보다 작고 단순한 조직이면서, 진짜에 똑같은 해부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기술은 2010년대 초부터 급속한 발전을 이뤄지고 있다.

인간 태아와 유사한 뇌파를 검출

2019년 10월 인간 피부 세포에서 배양한 콩알 크기의 세포 조직에서 인간 태아와 유사한 뇌파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가진 뇌오가노이드가 시험관 내에서 만들어진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교에서 신경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앨리슨 무오트리 교수들의 연구팀입니다. 무오토리 교수는 교토대학 iPS세포연구소 소장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교에서 실시한 iPS세포 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인간 피부세포를 한번 줄기세포로 변화시킨 후 뇌 오가노이드와 불리는 세포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해당 논문(Complex Oscillatory Waves Emerging from Cortical Organoids Model Early Human Brain Network Development)은 세포 줄기세포 저널(Cell Stem Cell)에 실렸다.

10개월이 경과한 뇌오가노이드. [출처: Cell Stem Cell]

연구팀은 여러 뇌 오가노이드가 생성 후 2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폭발적으로 뇌파를 방출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 뇌파의 신호는 매우 드문 일로 일정한 주파수로 발산되고 있어 이는 발달 초기 단계에 있는 인간의 태아 뇌파에 가깝다.

이에 연구팀은 생후 6개월~9개월 반의 미숙아 39명으로부터 기록된 뇌파로 AI를 훈련하고 다채널 전극어레이로 측정한 뇌 오가노이드의 신경활동을 분석했다.

이후 AI에 뇌 오가노이드의 뇌파를 입력해 인간 태아와 실제로 뇌오가노이드를 배양하고 있던 기간과 높은 정밀도로 일치했다. 이는 뇌 오가노이드가 인간의 뇌와 비슷한 성장 과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배 기관을 갖춘 원시적인 눈 형성

2021년 8월에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미니 뇌에 안배(optic cups)라고 불리는 기관을 갖춘 원시적인 눈을 형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독일 뒤셀도르프대학 병원 유전학연구소 제이 고팔라크리슈난 연구팀은 눈 조직을 직접 배양하는 것이 아닌 뇌 오가노이드에서 눈을 생성하는 실험에 돌입했다. 먼저 4명의 기증자 iPS 세포를 준비한 다음 이전에 개발한 줄기세포를 신경조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을 응용해 배양액에 비타민A의 일종인 아세트산레티놀을 첨가해 시신경의 일종인 시신경유두를 가진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미니 뇌에 안배(optic cups)라고 불리는 기관을 갖춘 원시적인 눈을 형성. [출처: Cell Stem Cell]
이러한 뇌 오가노이드를 배양한 결과 총 314개 중 72%에서 시신경유두를 형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빠른 것은 만든 지 30일 만에 안포를 형성했고, 60일 후에는 성숙한 시신경 유두를 갖게 되었다. 이 뇌 오가노이드의 발달 속도는 인간 태아에서 안구의 발달시기와 거의 같았다.

해당 논문(Human brain organoids assemble functionally integrated bilateral optic vesicles)은 세포 줄기세포 저널(Cell Stem Cell)에 실렸다.

연구팀이 만든 뇌 오가노이드는 다양한 종류의 망막세포를 갖추고 있어 수정체나 각막과 같은 조직 외에 빛에 반응해 활동하는 신경세포의 네트워크도 확인됐다. 시신경유두 배양 자체는 이전부터 진행되어 왔지만, 뇌 오가노이드에서 시신경유두를 형성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미니 뇌, AI보다 18배나 빨리 게임 방법 익혀 

2021년 12월에는 호주와 영국 공동연구팀이 페트리접시 안에서 배양한 인간 뇌세포에 탁구 게임 ‘퐁(PONG)’ 1인용 모드를 불과 5분 만에 플레이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재 AI가 같은 것을 배우려고 하면 90분이 걸린다.

생명공학과 공학을 융합시키는 합성 생물학 관련 개발 업체인 ‘호주 코타컬랩스(Cortical Labs)’ 소속 연구팀은 SF소설에나 등장할만한 생물학적 인공지능(SBI, Synthetic biological intelligence)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뇌세포를 배양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실험용 쥐의 뇌 배아에서 추출한 초기 피질 세포와 인간의 유도만능 줄기세포(iPS)를 분화시켜 생성한 뇌세포를 통해 뇌와 기계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접시뇌(DishBrain) 시스템’을 구축했다.

80만~100만개의 뇌세포로 구성된 접시뇌 시스템에 퐁 1인용 모드를 플레이시킨 결과, 불과 5분 만에 게임 방법을 배웠다.

해당 논문(In vitro neurons learn and exhibit sentience when embodied in a simulated game-world)은 사전출판 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게재됐다.

DishBrain 시스템 및 실험 프로토콜 개략도. [출처: biorxiv]
게임 학습은 미세전극판 위에서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전극판 좌우 전기 신호로 공의 위치를, 거리는 주파수 변화로 표시했다. 미니 뇌의 뉴런은 마치 스스로가 공을 처리하는 패들인 것처럼 신호를 보내면서 게임 방법을 점차 익혀 나갔다.

실험 결과, 아직 뇌접시 시스템은 인공지능보다 게임 실력이 뛰어나지는 못했지만 10~15회 정도 주고받는 경기만으로 게임 방법을 파악했다. 반면 AI가 퐁을 학습하는 데 걸린 랠리 수는 5,000회에 이른다.

이는 뇌접시 시스템을 사용해 체외 피질 뉴런의 단일 레이어가 시뮬레이션된 게임 세계에 구현될 때 지능적이고 지각 있는 행동을 스스로 조직하고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주름진 ‘미니 뇌’ 개발

국내서도 올해 8월 기초과학연구원(IBS) 조승우 나노의학 연구단 연구위원(연세대 교수) 연구팀이 신생아 뇌 수준에 가깝고 크기도 2배가량 큰 ‘미니 뇌’를 개발했다.

연구팀은 뇌 오가노이드를 하이드로젤을 이용해 배양실험을 한 결과, 대뇌 피질을 구성하는 신경상피(신경세포층으로 이뤄진 조직)가 발달해 뇌 주름이 다량 생성된 것을 확인했다. 또 신경세포와 성상교세포, 미세아교세포 등 다양한 뇌세포가 기존에 비해 더 많이 발현했다. 뇌 오가노이드의 구조와 기능이 전보다 한층 성숙해졌음을 보여준 결과다.

연구진이 개발한 ‘인간 미니 뇌 배양 플랫폼’ 모식도. [출처: IBS]
이렇게 만든 뇌 오가노이드에 미세유체칩을 적용하면 기존 2∼3㎜보다 약 2배 큰 4∼5㎜ 크기로 커지고, 신경 기능도 증진됐다. 연구팀은 최대 뇌 오가노이드가 8㎜까지 커지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 논문(Microfluidic device with brain extracellular matrix promotes structural and functional maturation of human brain organoids)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실렸다.

나노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뇌 오가노이드 배양 플랫폼은 난치성 뇌질환 기전 규명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효과적인 체외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

시사점: 미래 AI는 바이오와 만난다

인공지능(AI)은 뇌와 유사한 기능을 갖지만, 작동원리는 인간 뇌와 전혀 다르다. 인간의 뇌는 다양한 외부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한 후에 뭔가 새롭고 적절한 행동을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인공지능과 인간 지능은 마치 비행기가 새의 비행을 닮았다. 하지만, 작동 원리는 전혀 다른 것처럼 겉보기에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은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진정한 AI를 위해서는 진짜 뇌를 만들어야 한다. 진짜 뇌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 과학자들이 뇌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은 극히 일부만 인간 뇌와 모양이 비슷하다. 그저 신경신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3차원 세포 배양체 정도다. 이 3차원 세포 배양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뉴런과 교세포, 줄기세포 등이다.

그럼에도 뇌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과학자들의 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상상은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

김민중 기자 science@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뿐이다. 독서는 그 시작이다.” – Albert 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