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문화코드가 된 버지니아 울프

(김미옥 문예평론가)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법

솔 출판사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울프가 읽은 작가들』이 발간되었다.
한국 버지니아울프학회의 14권 째 번역집이다.
그동안 책이 나올 때마다 구입하고 이벤트에 당첨되기도 하면서 모두 갖추게 되었다.
이 책을 나는 울프 자신만의 ‘문예관’이자 독서법으로 읽었다.

흔히 문예사조사가 그리스 비극으로 시작하듯이 울프는 자신의 독서를 연대순으로 나열했다.
그런데 그녀는 책에서 책으로, 작가에서 작가로 날아다닌다.
예를 들면 1부의 ‘고전에서 17세기까지’는 그리스비극의 소포클레스를 얘기하다 느닷없이 제인 오스틴과 프루스트와 연결해 버린다.
나는 책을 읽다가 『오만과 편견』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꺼내 대조해야 했다.
나의 수사 본능(?)은 증명을 요하는 것인데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보자.
‘그리스 비극은 옥외에서 벌어지는 연극의 웅변이라 문장의 섬세함,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다. 입술이나 눈이 아니라 몸 전체와 신체의 비율을 중시한다. 그러니 전체를 보아야 한다.’
현대의 작품이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섬세한 감각을 요구하는 실내의 공간을 요구한다면 그리스 비극은 실외에서 완성된다는 것이 골자다.
많은 작가와 작품을 들먹여도 그 시대의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지 넓은 시야로 일축한다.

(버지니아 울프, <울프가 읽은 작가들>, 솔출판사, 2022)

이 책은 모두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화려한 잡동사니의 방: 고전~17세기」, 2부는 「순은으로 쓴 글: 18세기」, 3부는 「소설이라는 거울: 19세기」, 「민감한 마음: 20세기」로 그리스 비극에서 제인 오스틴을 거쳐 캐서린 맨스필드까지 이른다.
버지니아가 거론하는 작품은 크게 48편이다.
그 속에 또 언급되는 작가나 작품을 말하면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방식에 중점을 두기로 하자.
그녀는 비평가나 학자의 권위에 개의치 않고 순수한 독서를 진정한 독서라고 보았다.
자유로운 독서를 강조해서 좋은 책, 나쁜 책 가리지 않고 읽었다.
나쁜 책은 나쁜 책대로 즐거움을 주는 것인데, 조건이 있다.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으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울프의 독서법은 사적인 일상의 영역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상상력을 통해 구축하는 것이다.
독서는 학식이나 세련된 취향, 영향력을 얻는 방편이 아니라 자기만의 인물론, 시대론, 문예론을 창조하고자 하는 충동의 실천으로 보았다.

아무런 욕심 없이 순수한 독서에 대한 열정으로 책을 읽는 독자는 고전만이 아니라 현대작품에서도 기쁨을 찾고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서 재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책, 나쁜 책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준비되지 않은 나쁜 독자가 있다.
준비되지 않은 작가가 어설픈 책을 냈다면 그 책을 읽고 우리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작가가 책을 내기에 아직 실력을 갖추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작가라면 이 주제를 다르게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책이 나쁜 책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면 나쁜 독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으면 백 편의 독후감이 나올 수 있다.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독후감이 나온다면 문제가 있다.
물론 비슷한 생각과 흡사한 감정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문이 나온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사진=솔출판사 제공]

버지니아 울프의 『울프가 읽은 작가들』을 읽어보라.
그녀가 말하는 독서법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녀는 ‘전작주의’다.
예를 들면 토머스 하디를 설명하기 위해 초기작부터 읽었다.
천성적으로 모든 것을 의식하는 작가와 감정에 휩쓸려 작품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할 수 없는 작가 유형이 있는데 후자에 그를 넣었다.

울프는 원문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영어 원문도 따라가기 벅찬데 러시아어나 그리스어를 어찌 읽는단 말인가.
그녀의 말을 빌리면 유머를 외국어로 번역하면 제일 먼저 없어진다고 일갈했다.
그러니 우리는 좋은 번역가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문학의 고전이고 하나의 문화코드가 되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영감을 받는다.
영화가 되고 발레가 되고 음악이 되고 문학이 되고 종합예술이 되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나는 똑똑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뿐이다. 독서는 그 시작이다.” – Albert Einste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