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문학인] 박찬호 시인의 광고쟁이 인생이 녹아 있는 시 이야기
정성현 세종국어문화원 인문학연구소장] 개구리도 깨어난다는 경칩을 지난 즈음 문득 말로, 글로 먹고사는 직업군 중 이른바 가장 현대 문명과 문화의 영향에 민감하다는 ‘광고업계’ 사람들은 문학 혹은 ‘글쓰기’ 작업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얼마나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 또 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35년 차 뼛속까지 광고인이며 시인인 그를 만나보았다.
박찬호 시인은 대학 때 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대기업 광고 회사에 들어가 PR 부문과 SP(Sales Promotion)마케팅 부문에서 근무했다. 이후 회사를 나와 개인 광고기획사를 차려 24년째 회사를 운영하는 35년 차 현역 광고인이다.
2020년 ‘월간 시’ 제29회 추천 시인상과 계간 ‘미래시학’ 시 부문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늦깎이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그간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시에 대한 열정으로 2021년 시집 ‘꼭 온다고 했던 그날’, 2022년 ‘지금이 바로 문득 당신이 그리운 때’를 발간했다.

박찬호 시인. (사진=박찬호)
Q ‘문학’이 광고인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
‘문학’ 또는 ‘글쓰기’란 제 경우, ‘농사꾼의 경운기’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농사를 짓다 보면 작게는 호미부터 크게는 트랙터까지 많은 장비들이 필요하지만 그중 가장 유용하고 다방면으로 많이 쓰이는 게 ‘경운기’입니다. 문학과 글쓰기 작업이 제겐 이 ‘경운기’와 같습니다.
Q 흥미로운 비유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광고 일을 하다 보면 사회, 문화, 경영, 경제 트렌드 등 다양한 방면의 지식을 요하기도 하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지식은 인문학적 소양에 기초한 글쓰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업계에 있어 글쓰기란 주로 광고업무 수주를 위한 ‘제안서’ 작업과 수주 이후 광고 제작 시 쓰는 ‘카피’가 될 텐데요. 이는 무형의 생각과 이미지를 유형의 가치로 만들고 이를 클라이언트에게 설득시켜 작게는 몇억부터 많게는 몇백, 몇천억의 광고업무 수주 실적을 올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시면 제안서 몇 장에, 광고카피 몇 줄에 몇백억의 수주 성공과 실패가 달려 있으니 그 글들의 설득력이란 게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렇다 보니 다른 주변 학문도 중요하지만 이를 제대로 표현해 고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그 명분과 의미를 설득할 수 있는 ‘글’이란 것은 분명 경쟁자와 변별력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변별력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찐 글쓰기 작업’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문학 또는 글쓰기는 말 그대로 생계와 직접적인 연관이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Q 광고업계에서 나름 글쓰기를 업으로 삼으시면서 한편 순수문학인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대학 때 문학을 전공했고 특히 시 쓰기를 좋아했지만 사회에 나와서 소위 먹고 살기 바빠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틈틈이 시를 쓰는 문학청년을 지나 문학 장년으로 넘어간 즈음이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광고업계의 글쓰기 작업을 통틀어 응용문학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앞서 얘기한 클라이언트 설득과 관련된 얘기고 이는 곧 속칭하여 ‘돈’과 관련된 일이라 스트레스를 무척 많이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2019년 제게 비강암 중 아주 희소한 암인 ‘기형암육종’이 발병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몇 사례가 없다는, 그래서 치료 방법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다는 암이었습니다. 수십 차례의 항암치료와 두 차례의 수술, 그리고 두어달 간의 방사선 치료와 암과 관련되어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다 받았습니다.
그렇게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한가지 든 생각이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세상에 뭔가는 남기고 가야지, 그간 바쁘다고 또는 돈이 안 된다고 미뤄 왔던 일들, 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 쓰기’였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절박한 심정에서 마지막 투혼이라 믿으며 썼습니다. 그 결과 자기소개에 말씀드린 대로 문학지 두 곳에 동시 당선되어 시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참 아이러니한 게 만일 그 당시 암이 발병되지 않았고 사경을 헤매지 않았다면 제가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시를 썼을지 하는 의문은 지금도 남습니다. 이후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회고의 마음과 절체절명의 심경을 담아 시집들을 엮었습니다.
Q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그런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인생에 가장 영향을 준 책이 있다면 무엇이며 왜 그런 것인가?
아마 1984년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대학교 2학년 때 워낙 시절이 하 수상(殊常)할 때였죠. 우연히 서점에서 ‘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들(한길사)’ 책을 보고 너무나 흥미로워 꼬박 밤새워 한 번에 다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드레퓌스란 한 초급 장교의 간첩 혐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 사회적 대결과 이후 벌어지는 사상적 담론 투쟁까지 어찌 보면 그리 크게 확대될 일도 아닌, 그냥 군대 내 처리로 묻힐 수 있는 일들이 어떤 과정과 사회적 이슈 투쟁을 통해 그리도 거대한 사회적 담론으로 커졌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갓 스물을 넘은 저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사소하다고 보여지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메이저의 논리가 항상 참이라 볼 수는 없다는 것’
‘진실은 어두운 곳에,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다는 것’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끝없이 진실을 찾아가는 것들이 바로 참 선진 문화라는 것’
당시 우리나라 사회상과 맞물려 삶의 가치관도 혼란스럽고 그 삶을 이어가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을 때 이 책은 저에게 마치 “방향은 저기다 저기로 가야 한다”라고 외치는 듯했습니다. 그 이후로 물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때마다 항상 ‘이 길이 맞는가?’, ‘나는 참을 지향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마치 인생의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Q 그렇다. 그 책은 우리에게 지금도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시인의 사상과 철학을 잘 나타낸 시 한 편 소개해 달라?
어떤 시든 작품이고 나름대로 생각과 삶의 철학을 다루고 있어 그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4월, 다음 달에 세 번째 시집이 출간될 예정인데 그 안에 실릴 예정인 시인데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나를 포함한 우리들 민초들이 어떤 모양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표현하고자 한 시입니다. 우리 서민들, 민초들의 삶의 모습, 이 험한 사회를, 엄혹한 이 시국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세, 생각해 보면 정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한 우리들의 삶에 대한 태도. 이는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우리 아들, 딸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그런 모습들입니다.
누구도 세상에 본인이 원해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삶을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 단죄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꽃은 꽃대로 풀은 풀대로, 심지어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하는 잡초조차도 잡초대로 다들 자기의 역할을 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삶의 모습을 표현하고 그 삶의 형태에 경의를 표하는 시입니다. 너와 같고 나와 같고 우리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가끔 보고 있자면 그 나약함 속의 강인함이며, 우리 국민 오천만 분의 일로 살아가는 평범함이며, 그 평범함의 영속성 등이 가끔은 우리를 숙연하게 하기도 합니다.
박 시인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작시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을 낭송했다.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강렬했으며, 마치 자신이 직접 겨울의 혹독함을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눈은 꽉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시에 담긴 깊은 감정이 드러났다. 이 시에는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희망을 향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박 시인의 삶에는 우리에게 현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시는 우리에게 변화를 위한 용기를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반기지 않는, 반갑지 않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 박찬호
따가운 가을 햇살이 든 바람
올림픽 도로변 누구도 축복하지 않는 삶
이름이 없다고 하기도 하고 이름을 모른다고 하기도 하는,
통칭으로 기타의 생명들로 불리워도 괜찮은 것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부활이 시골 아낙 아이 낳기보다 수월한,
여건과 조건이 필요치 않은 삶의 강인함
살기위해 주위의 나약함 따위는 배려의 여지가 없는,
그래서 생의 경이로움 따위는 잊힌 지 오래인,
누구는 타고난 천성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생명에의
집착이 만들어 온 진화의 과정이라고도 하고
그렇게 그들 만의 리그는 시작되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그들 만의 리그로 무한 반복된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밟으면 밟을수록, 죽이면 죽을수록,
굴종과 회한의 역사는 없다.
살아남는 것만이 최고의 선(善)
쓰러져 있다고 다친 것은 아니며,
꺾여져 있다고 목전에 죽음을 둔 것도 아니고
잘려 없어졌다고 해서 영원히 죽은 것은 더더욱 아닌,
생각해 보면 눈물나는 신비로움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의 작은 역사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삶의 순환
가치없는 생의 궤적
한강의 바람은 언제나 좌에서 우로
풀잎 혹은 잡초들은
바람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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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현 세종국어문화원 인문학연구소장 news@munhaknews.com